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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 전자책
기회, 과정, 결과에서의 동일한 '공정'성이 담보되어야 이 사회에 팽배한 '무한경쟁 논리', '능력주의'가 합리화될 수 있다.
편협을 진리라 믿고 살아가는 너와 난, 점점 투명해져 사회를 비추는 '거울'로서만 존재하게 될 것이다.
나는 경제학과를 2005년에 입학했다. 당시 나는 연세대 인문대와 서강대 경제학과를 지원했었는데, 이것은 분명히 나의 선택이었다. 그렇다. 솔직히 말하면 나는 점수에 맞추어 전혀 다른 성격의 두 개의 학과(경제학과 인문학)을 지원한 것이다. 그렇다면 무엇이 나를 이렇게 선택하게끔 했을까? 대학을 6년째 다니면서 이러한 고민은 처음 해본다. 아마도 많은 이들이 나처럼 점수에 맞추어 대학을 지원했을 것이다. 대학배치표는 수험생들을 위해 일종의 사회적인 합의가 대학교와 학과들을 순위를 책정해준 것이다. 이렇게 보면 대학서열화는 참으로 편리하고 유용한 정보이지만 학과가 평생의 직업과 더 나아가 인생을 결정할 수 있는 변수라는 것을 인정한다면 참으로는 위험한 발상이 아닐 수 없다. 나는 그 위험을 무릅쓰고 점수에 맞추어 서강대 경제학과를 지원했다. 왜냐하면 수능점수가 아까웠기 때문이다. 나에게 있어 수능 점수는 475점 어치의 ‘상품권’과 같았다. 상품권은 그 범위 안에서 물건을 살 수 있지만 거스름돈은 주지 않는다. 우리가 10만 권 상품권을 가지고 쇼핑을 할 때, 어떻게든 10만 원을 다 쓰려고 노력하듯, 나 역시 나의 475점을 어떻게든 남김없이 다 쓰려고 했던 것이다. 당시 나는 수능점수가 재수까지 해서 힘들게 획득한 상품권이라 생각했고 그것을 내가 살 수 있는 최대의 가격표가 붙어 있는 서강대 경제학과와 연세대 인문학과에 사용했다. 손해 보기 싫은 그 심리, 남들이 7만 원짜리 상품권으로 살 물건과 내가 10만 원짜리 상품권으로 살 물건이 같으면 손해라는 그 심리가 나를 이곳으로 오게 만들었다. 그것이 정말 내가 원하던 물건이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사실, 나는 400점짜리 상품권으로 살 수 있는 다른 대학의 ‘영화학과’를 무척이나 가고 싶었다.
“어떤 사람들은 투 스트라이크를 맞은 상태로 인생을 시작하는가 하면 어떤 사람들은 3루에서 태어난 주제에 자기가 3루타를 쳤다고 생각하며 산다”
“한세진 씨는 꽤나 전문성이 있어 보이는데, 왜 지금까지 이렇게 취업에 실패했나요? 이유가 무엇이라 생각하는지요?”라고 묻는다. 그녀는 “지금까지 아무도 이런 질문을 해주지 않았기 때문입니다”라 답한다.
취업되기 위해 그 힘든 자기계발을 하는 건데, 결과적으로는 취업과 상관도 없는 단순한 ‘상대적 비교에서 오는 자기만족’을 위해 자기계발을 하고 있는 셈이니 말이다. 앞서 그 자체로 만족할 수 있는 진정한 의미의 자기계발에 대해 말한 바 있지만, 이 경우는 결코 그것도 아니다. 남보다 위에 올라서려는 노력이 자기계발일진대, 그로 인한 성과가 없다보니 일부러 자신보다 비교우위가 ‘낮은’ 집단을 곁에 세워둔 채 위로를 구하는 셈이다. 그러니 여기서도 결국 ‘자기’계발은 없다.
< 2018.07.23, 이 나라 모든 비정규직과 예비 비정규직에게 희망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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