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에세이, 종이책
나는 시절이 아주 좋을 때에도 문학 비평은 사기라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있다.
왜냐하면 이런 책은 좋고 이런 책은 나쁘다는 평가를 의미 있는 진술로 만들어 주는 합의 된 기준.
즉, 외부적인 참조 대상이 존재할 수 없는 한, 문학 작품에 관한 모든 평가는 본능적으로 선호하는 것들을 정당화하는 규칙들을 꾸며 내는 일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책에 대한 진정한 반응은 대개 먼저 "이 책이 맘에 들어."나 "이 책이 맘에 안들어."를 표명한 다음 자신이 내린 평가를 합리화하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이 책이 맘에 들어."는 비문학적 반응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 책은 내 편이니까 장점을 찾아야만 해."가 오히려 비문학적 반응이다. 물론 정치적인 이유로 책을 칭찬할 때에는 격하게 동의를 한다는 의미에서 감정적으로 진실해질 수 있겠지만 당파적 연대감으로 뻔한 거짓말을 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 정치적인 글을 게재하는 정기 간행물에 서평을 써 본 사람이라면 잘 알 것이다. 일반적으로 자신과 생각이 일치하는 간행물에 글을 쓸 때에는 헌신으로 죄를 짓고, 생각이 다른 간행물에 글을 쓸 때는 태만으로 죄를 짓는다.
어느 경우든 찬반을 표명하는 셀 수 없이 많은 논쟁적인 책들 - 소비에트 러시아, 시오니즘, 가톨릭교회에 대한 찬반을 표명하는 책들 - 은 읽기도 전에 평가를 해 버리고, 실제로는 글을 쓰기도 전에 평가가 끝나 버린다. 우리는 그런 책들이 어떤 간행물에서 어떤 대접을 받을지를 미리 알수 있다. 그러면서도 때로는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것을 반의반만큼도 의식하지 못한 채 진정한 문학 기준을 적용하는 척을 한다.
- 작가와 리바이어던 -
< 1903 ~ 1950 >
'책' 카테고리의 다른 글
에디 혹은 애슐리 - 김성중 (0) | 2020.06.29 |
---|---|
휴가 중인 시체 (0) | 2020.06.19 |
검은방 - 정지아 (0) | 2020.06.17 |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 2020 (0) | 2020.06.16 |
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 제로 - 채사장 (0) | 2020.05.30 |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 김초엽 (0) | 2020.05.16 |
유튜브는 책을 집어삼킬 것인가 - 김성우, 엄기호 (0) | 2020.05.14 |
진중권의 서양미술사 - 인상주의 편 (0) | 2020.01.12 |
역사의 쓸모 - 최태성 (0) | 2020.01.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