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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울한 사람들의 나라 - 최태섭

by 충청도 자손박 2018. 5. 11.
억울한 사람들의 나라
국내도서
저자 : 최태섭
출판 : 위즈덤하우스 2018.0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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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 종이책

'계약'이라는 행위의 기원은 약자를 보호하는 것이었다. 불평등한 주체들 간의 관계에서 서로의 의무와 권한을 제한해 결과적으로는 약자를 보호하기 위한 장치가 계약이다. 근대적 주권 사상의 기초가 되었던 '사회 계약론' 역시 국가라는 거대한 존재와 개인이라는 작은 존재를 계약이라는 절차를 통해 동등하게 만든 것이다. 국가가 개인을 자의적으로 쥐고 흔들 수 없도록 그 권한을 한정짓는 것이 사회계약의 핵심이다. 부당한 국가 폭력에 대한 저항들 역시 저 계약이 만들어준 정당성으로부터 출발한 경우가 많다.

사이버스페이스에서 가장 큰 경쟁은 어떻게 더 많은 이들의 주목과 관심을 끌 것인가이다. 왜냐하면 랜선을 타고 넘어오는 주목과 관심이 오늘날 온라인 공간의 거의 유일한 자원이 되었기 때문이다. 이제 주목 경쟁은 약한 자존감을 가진 개인들이 자신의 자아를 보상받기 위해 벌이는 가련한 게임이 아니다. 주목 경쟁은 오늘날 미디어 환경 내에서의 유일한 목표이자 결과이고, 그 자체로 산업이다.

사실 남자들이 가장 원하는 것은 여성 징병이 아니다. 그들이 바라는 것은 여성들이 남자들의 군 경험을 대단하게 생각해주면서 그것에 대한 보상으로 돌봄과 성적인 서비스를 제공하며, '2등 시민'으로 머물러 있는 것이다.

거리로 나온 사람들은 이제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보다는, "이게 나라냐?"라고 외치기로 한 것 같다. 그리고 이 말은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라는 사건을 넘어서는 어떤 근본적인 의문을 담고 있다. 문을 열고 나가면 그런 말도 안되는 일을 가능하게 했던 참모진과 청와대 시스템의 침묵과 동조가 있다. 거기서 한 발 더 나가면 그런 사실을 알고 있었다는 정황이 농후함에도 불구하고 그를 대통령으로 만드는 데 앞장섰던 여당, 보수언론, 고위 관료들이 만들어놓은 권력의 카르텔이 있다. 한 발 더 나가면 이런 것을 바로잡아야 하는데도 불구하고 권력의 사냥개가 되어 정권에 찍힌 사람들을 쥐 잡듯 했던 검찰과 경찰이 있다. 한 발 더 나가면 이런 세력에게 정권을 넘겨준 것도 모자라서, 주판알 튕기는 소리만 요란하게 내는 야당이 있다. 한 발 더 나가면 권력자와 그의 친구들을 살뜰하게 챙기면서, 힘없는 시민들에 대한 갑질과 내부의 이권 다툼, 비상식적이고 방만한 운영을 일삼았던 부패한 관료 시스템(물론 기강을 흐린 것은 상층부에 있는 고위직들이다)이 있다. 한 발 더 나가면 그런 국가시스템의 비위를 맞춰주면서 규칙을 어기고 노동자와 소비자를 쥐어짜 배를 채운 재벌과 대기업이 있다. 거기서 한 발 더 나가면 가지고 있는 권한은 그게 주머니칼이든, 6.9센티미터짜리 막대기든 마구 휘두르고, 반칙하지 않으면 손해를 본다는 믿음을 가지게 된 평범한 사람들이 있다. 그리고 한 발 더, 아뿔싸. 낭떠러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