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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 종이책
씌워진 줄도 모를 '눈가리개'
세대 게임은 사회문제를 '세대'의 부호로 변환한다. 세대 게임의 플레이어들은 중요한 사회문제가 세대 대립에서 비롯한다고 주장하면서, 다른 가능한 원인에 주목하지 못하도록 만든다. 마치 마술사가 관중의 이목을 엄한 곳에 쏠리도록 하여 자신의 트릭을 눈치채지 못하게 만드는 것처럼. 그렇다면 세대 게임과 함께 '세대'라는 용어는 나쁜 것이며, 그것들을 모두 청산해야만 하는 걸까? 내 답은 '미안하지만 아닙니다' 나는 세대가 가진 힘, 곧 개인들의 사회'를 분석하는 도구로서의 힘을 믿는다. 내가 경계하는 것은 그렇게 세대가 중요한 만큼, 세대를 활용하여 자신의 목적을 이루려는 집단과 세력의 준동도 더 커지고 강해질 것이라는 점이다. 그래서 더한 조심성으로 경계해야 한다. 세대 게임의 플레이어들이 짜놓은 전쟁터에 참전하기를 의심하고 주저해야 한다. 그를 위해서 세대가 커뮤니케이션 되는 방식과 그것의 전략적 측면, 곧 세대 게임의 논리를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다.
같은 시간을 살았다는 경험에서 같은 시간의 소속감과 공동체성을 취할 때 세대가 형성된다. 그래서 세대 브랜드의 소비자와 생산자 모두 특정 시간, 지질학의 표현을 빌리면 특정 시간층(Zeitschicht)에 주목하게 된다. 회고적 증가를 설명하는 하보 크노흐의 문구가 이를 잘 표현한다. 잠재적인 "세대 구성원은 하나의 시간층을 매체를 통해 가공하는 가운데 스스로를 재발견하고 추후에 그들이 거기에 귀속됨을 선언하게 된다.”
세대 정체성의 구심점이 어르신들의 시간 고향에 대한 기억인데, 가변적인 기억을 쉽게 믿을 수 없다? 그렇다면 그것 이 어떻게 구심점 역할을 할 수 있겠는가. 김원은 다음과 같이 답한다. 기억이 “과거에 대한 진실을 규명하기 위"해 필요하지만, “과거와 현재의 관계를 규명하는 도구이기도 하다." 요컨대 세대 정체성의 핵심은 시간 고향에서 함께 취득한 경험과 기억이 아니라, 시간 고향을 향해 투사한 현재의 요구와 주장이다.
“한 세대의 시간 고향은 언제나 매우 시의적절하다."그들의 경험이 현재의 요구라는 필터를 거쳐서 시간 고향의 스크린에 투사되기 때문이다. 과거 경험이 지금의 요구에 따라 각색되어 시간 고향에 대한 추억으로 상영되기 때문에 시의적절한 것이다. 요컨대, 1970년대 향우회원들의 세대 이야기는 그들의 현재 고충과 시간 고향에 대한 기억이 결합된 요구이자 주장이다.
관찰자와 당사자는 전혀 다른 세상에 산다. 이를 클리퍼드 기어츠의 문화에 대한 설명으로 이해할 수 있다. 그는 문화를 세 측면으로 나눈다. 인지, 감정, 도덕. 아들의 전사는 의미의 영역에서 세 측면 모두를 포괄한다. 관찰자는 인지적 측면에 주력한다. 알렉시예비치는 이렇게 말한다. '아들의 죽음은 소련이 국제정치적 이익을 위해서 무모하게 침공한 결과입니다. 정말 헛된 죽음입니다.' 이와 달리 당사자는 감정이나 도덕에 충실하다. 나타샤는 아들의 의미 없는 죽음을 감정적으로나 도덕적으로 용납할 수 없다. ‘아니야, 내 아들은 영웅이라고. 나라를 위해 자신을 바친 참된 영웅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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