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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숙한 절망 불편한 희망 - 다니엘 튜더

by 충청도 자손박 2016. 1. 5.

익숙한 절망 불편한 희망
국내도서
저자 : 다니엘 튜더(Daniel Tudor) / 송정화역
출판 : 문학동네 2015.0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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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 전자책


자칭 한국을 사랑한다는 영국 출신 저자가 타국인의 시선으로 한국 정치 지형을 분석.

특히 '한국형 진보'의 무능함을 비판하며, 앞으로 진보가 나아갈 방향을 저자 나름대로 제안하는 형식. 

다소 이상적이거나 필요 이상으로 과격한 지점도 있었으나, 대체로 합리적인 논지와 실효성 있어 보이는 대안들을 제시하고 있어 흥미로웠음'꽤 일리있네' 정도랄까?

속은 시원하네.




정부 비판 언론사들은 정부가 하는 거의 모든 일에 트집을 잡는다. 상당히 권위적인 국가에서도 정부 비판 언론은 존재한다. 어떤 측면에서 보면 비판 언론이 존재한다는 것 자체만으로 민주주의가 보장되는 것 같은 착시를 일으킨다. 동시에 정부 비판 세력이 극단적인 그룹이나 비주류로 인식되게 하는 데 도움이 된다. 개인적으로 정부 비판 언론에는 어떤 제약도 두지 않고 원하는 만큼 공격적인 보도를 허용하는 편이 어느 정부에든 오히려 득이 되는 때는 그들이 합리적 중도 노선을 지향하는 시점이다.

- 합리적인 진보 언론을 기다리며 - 



표면적으로 새정치연함과 새누리당을 구별할 수 있기는 하다. 거슬러 올라가면 뿌리부터 다른 부족처럼 오랜 세월에 걸쳐 두 당은 서로 다른 역사를 써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두 당의 정책과 정책을 뒷받침하는 사고방식은 본질적으로 별로 다르지 않다. 필자는 안희정 당시 충청남도 도지사를 인터뷰한 적이 있다. 그때 그가 "자유시장 이데올로기를 믿는다"고 말했던 것을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한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대기업 우선주의 떄문에 진정한 의미의 자유시장이 존재한 적이 없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앞으로도 그것이 영영 불가능할지도 모른다는 점이다. 대기업이 사실상 거의 모든 것을 장악하고 있기 때문이다. 새로운 사업 기회가 생겨도 금세 대기업 차지가 되며, 대기업의 독주에 방해되는 존재들은 금새 박살나고 만다.

- 한국에는 진정한 자유시장이 존재한 적이 없다 - 



영웅주의는 민주주의 본질을 훼손한다. 영웅시된 정치인 개인에게 책임을 요구할 근거가 빈약할 뿐 아니라 정치인이 실제로 무엇을 하고, 지향하는 정책이 무엇인지보다는 인물 자체나 부풀려진 비현실적 이미지에 초점을 맞추게 되기 때문이다. 아이디어나 논의 등은 부차적인 것이 되고 만다. 영웅이 정당 정치 위에 존재하므로 정당마저 뒤로 밀려난다. 안타깝게도 이 일련의 과정은 영웅이 아닌 대중이 스스로 주도한다.

- 영웅은 없다 (안철수) -



한국에서는 하버드 박사면 똑똑할 뿐 아니라 오류가 없고 도덕적으로도 우월하다는 인식이 자연스럽게 따라온다.

문제의 사건으로 자폭하기 전까지 승승장구를 이어온 고승덕이 그 증거다. 내 주변 친구들도 삼시를 모두 합격하고 미국 명문 법대 여러 곳에서 석사/박사학위를 딴 대단한 사람이 있다고 얘기한 적이 있다. "삼시를 다 보고, 학위를 여러 개나 딸 필요가 뭐가 있지?"라는 질문을 하는 사람은 없고, 다들 자신들의 자녀가 고승덕처럼 공부를 잘하기만을 바라는 것 같았다. 백 번 양보해도 고승덕의 학력 과잉은 희한하다. 냉정하게 이야기하자면,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는 게 아닌가 싶다. 긴 가방끈으로 고승적이 '어떤 일'을 했는가, 그것이 더 중요하다.


학벌을 파는 것이 효과가 없다면 그렇게 할 리가 없다. 문제의 근원은 후보의 학벌로 그 사람의 윤리 수준이나 후보가 내세우는 정책을 간단히 판단해버리는 유권자에게 있다.

- 상품으로서의 학벌 - 



단지 나와 '적'이 같다는 이유만으로 김어준 또는 그 누구라도 완벽하길 기대하지 마라.


경외심에서, 또는 겉으로 드러나는 화려한 이미지에 이끌려 표를 던지는 것과 같은 심사에서 유명 논갱의 강연에 끌릴 수 있다. 하지만 유명인에 기대면 공적 토론을 약화시키고 위계질서를 고착화하는 데 기여하게 된다. 불완전한 인간을 숭배하지 말고 아이디어나 논의자체를 함께 발전시켜보는 것은 어떨까?

- 토크콘서트 열광 -


한 가지 이슈에 열을 올리다가 금세 새로운 주제로 옮겨가는 한국 여론의 냄비 현상이 그저 놀라울 뿐이다. 이는 워낙 특이한 성향이어서 아마추어 사회학자, 특히 한국에 살고 있는 외국인들도 한마디씩 하고 그들 나름대로 원인을 진단하곤 한다. 정치 견해부터 최신 유행 음식이나 요즘 뜨는 연예인까지 모든 것이 급변하는 경향 덕분에 한국 사회는 역동적이다. 하지만 이러한 냄비 현상이 정치문화에는 분명 악영향을 끼친다. 지독한 부패를 저지르고 의원직까지 박탈당해놓고도 사람들의 관심이 다른 데로 옮겨가 악행이 잊히고 나면, 언제 그랬냐는 긋이 뻔뻔하게 다시 얼굴을 내미는 한국 정치인들이 어디 한둘인가?

- 2012년 안철수 열풍과 경제민주화 화두 -



음모론은 힘없는 자들의 마지막 피난처일 수도 있으나, 힘없는 자들을 계속 힘없게 만들기도 한다. 물론 세월호 참사에 대한 정부의 대응에 크게 실망할 만하다. 먹을거리의 안전성 문제도 결코 가벼운 사안이 아니다. 하지만 내가 가진 시각에 들어맞는다는 이유로 가능성은 있지만 개연성이 적은 음모론을 맹목적으로 믿어버리면 나의 주장과 논리가 통째로 설득력을 잃을 수 있다. 분노할 거라면 합당한 근거를 기반으로 해야 한다.

- 분노하라, 합당하게 - 



2011년과 2012년의 안철수만큼 유명하고 존경받는 인물이 연단에 올라 "대선에 출마하겠습니다"라는 말 대신 "각 지역 공동체에서 함께 모여 보다 나은 세상을 위한 아이디어나 제안을 나누며 즐기자"고 했다면 실로 놀라운 현상이 일어났을 것이다. 적어도 각 공동체에서 긍정적인 변화가 일어나 유권자 스스로 정책 문제에 대해 생각하는 계기가 마련됐을 것이고, 연령대나 배경이 서로 다른 사람들이 한데 모여 협력했을 것이다.
- 한국의 배페 그릴로를 찾습니다 -



한국의 중소기업은 사실상 각종 지원책의 수혜자일 뿐이다. 한국 정부는 은행을 통해 중소기업에 저리 대출을 지원하고 있다. 중소기업은 저리 대출이 없으면 대기업 정글에서 생존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한국이 중소기업을 지원하는 방식은 지나치게 무차별적이며, 중소기업의 경쟁우위를 높이기 위한 핵심 전략도 없는 실정이다. 잘하는 중소기업을 선별하는 과정 없이, 모든 좀비들이 생존할 수 있도록 돈을 건네주는 것에 불과하다.

- 한국형 미텔슈탄트 -



복지에 대한 궁긍적 메시지는 

'복지는 정부가 여러분에게 투자하는 것입니다. 투자를 통해 여러분이 꿈을 이룰 수 있도록 지원하겠습니다. 나중에 세금을 많이 낼 수 있을 만큼 성공해서 돌려주십시오'

라고 전달되어야 한다. 지위상승에 대한 열망이 강한 한국에서 특히 효과적인 방법이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등록금, 무상급식 등 '무상' '반값' 타령뿐이다.(...)이런 접근법을 택하면 복지는 상금이 걸린 촌스러운 퀴즈쇼 처럼 보일 뿐 아니라, 사회적 약자에 대한 시혜로 비칠 뿐이다.

- 투자로서의 복지 -



복지에 지출하는 돈은 블랙홀로 사라지는 게 아니다. 복지정책 수혜자가 상점에 가서 물건을 사는 순간 복지에 투입된 돈은 가시 세상에 등장한다.

- 축복으로서의 실버 사회 - 



역대 한국 정보는 하나같이 '안보'의 중요성은 외치면서 '안전'은 외면해왔다. 하지만 안전이야말로 정부 존립의 핵심이다. 정부가 자국민을 보호하지 않는다면 정부의 존재 이유가 과연 어디에 있는가?

- 보건과 안전 - 



정치란 함께 사는 기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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