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 전자책
요즘 '오찬호' 책을 많이 읽게 된다. 불편한데 재밌(?)네.
소위 '문학'이라 불리는 것의 감명이 '사회학'에서 다시금 느껴진다.
엑스페이먼트, 디 벨레
여성혐오는 사람이 남자답지 못해서가 아니라 한국 사회의 이상한 ‘남자다움’을 맹목적으로 강요받았던 누군가가 ‘여자다움’에 길들여져 있지 않은 사람들에게 불만을 느껴 ‘인간다움’을 넘어선 행동을 했음을 말한다.
- 약자의 삶에 익숙지 않은 한국 남자의 딜레마 -
이해할 수 없는 이유로 자신을 신으로 여기며 우주의 중심에 두기 위해 이상하고 잘못된 질서를 남에게 강요하고, 자신보다 열등하다고 생각되는 사람 앞에서 막무가내로 구는 사람, 이러한 남성들의 공통점은 이러한 행위의 정당성을 기괴할 정도로 확신하며, 이를 거부하거나 맞서는 사람이 나타났을 때 극심하게 당황하고, 심지어 화를 낸다는 것이다.
- '개저씨'는 혁명의 단어다 -
좆을 좆대로 놀리면 좆 된다는 걸 보여줘야 하는데, 한국은 좆같아서 그런 거 모르고 살아도 되더라.
- 한국 남자들에게 '배신의 DNA'라도 있단 말인가? -
“인종, 젠더, 계급 간의 위계에서 약자에 대한 강자의 표현의 자유는 혐오 범죄일 뿐이다. (……) 표현의 자유는 보편적인 권리가 아니라 보편성을 향한 권리다."
- 나쁜 속담들이 없었다고 상상해보자 -
“이모는 집안일에 개입하기가 절대적으로 어렵잖아요! 그러니까 그냥 친구처럼 놀 수 있는 것 같아요.”
"엄마가 싫어하니까"
- 술집에서는 왜 '이모~'라고 부를까?
아이의 ‘성적’이 곧 ‘엄마’의 성적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받아들이는 배경을 이해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같은 부모지만 아이 때문에 엄마가 더 포기하고 참고 살았기 때문이다. 억울함은 아이에 대한 투자로 이어졌고 그때마다 남편은 “학원비가 그렇게 비싸? 제발 사교육비 좀 줄이자”면서 불만을 표출했을 것이다. 자신의 결정이 옳았음을 증명하기 위해서라도 아이는 대박이 나야 한다. 아이의 성적이 희생과 맞바꾼 엄마의 과거를 보상해주기 때문이다.
이것은 원한과 복수의 문제가 아니다. 엄마는 지금껏 가정에서 (노동은 끊임없이 했지만) 공식적인 ‘생산성’을 보여준 적이 없다. 남편이 생산성 있게 살도록 내조를 해야 했고 자녀들이 생산성 있는 사람이 되도록 뒷바라지에 충실했다. 이런 부차적인 존재에게 자녀의 입시 결과는 타인으로부터 ‘엄마 덕택에’라는 말을 들을 수 있는 유일한 기회다.
- 기도밖에 할 게 없는 여자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