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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르타주, 종이책
몬태나 대학교 성폭행 사건과 사법 시스템에 관한 르포르타주
- 앨리슨은 자기가 나서서 신고하면, 경찰이 믿어주지 않을까 봐 강간당하고도 입 다물고 있던 다른 여성들이 자기 권리를 위해 일어설 수 있을 거라고 했습니다.(본문 내)
- 내 진술이 다른 사람들이 같은 일을 겪지 않도록 하는 데 도움이 되기를 바랍니다. 누구도 다른 사람 탓에 두려움에 떨면서 지내서는 안 됩니다.(본문 내)
- 앞으로도 계속될 것 같았고, 또 다른 피해자들을 막고 싶었기에 사건을 세상에 알려야 했습니다.(대한민국 성폭력 피해자 중)
- 범죄의 피해를 입었고 또 성폭력의 피해를 입었음에도 거의 8년이라는 시간 동안 내가 무엇을 잘못했기 때문에 이런 일을 당한 것은 아닌가…'굉장히 내가 불명예스러운 일을 당했구나'라는 자책감에 굉장한 괴로움이 컸습니다. 그래서 이 자리에 나와서 범죄 피해자분들께 그리고 성폭력 피해자분들께 '결코 당신의 잘못이 아니다'라는 것을 얘기해 주고 싶어서 나왔습니다. 제가 그것을 깨닫는 데 8년이 걸렸습니다.(대한민국 성폭력 피해자 중)
피해자들이 공통적으로 언급하는 특정 의견이 순수(엄격한 기준의)하지 않은 의도를 함의한 게 아닌가 라는 의심이 들었다. 표면 그대로? 무의식적 방어기제? 집단력 강화를 위한 전략적 의도?
이들이 보여주는 용기에 쉽게 가 닿을 수 없다는 데에는 티끌의 의심도 들지 않으니 더 혼란스럽다.
그보다 더 혼란스러운 건 의심의 옳고 그름을 떠나
나 자신이 '직접경험 부재'인 간접자니 가늠하기 힘든 영역이라 치부해버리고,
여기저기 물음표를 찍어 대며 합리화를 위한 논리를 만들려 애쓰면서 '선한 3자'라는 위치를 공고히 하고 싶은 건 아닌지...
그리고 뭔가를 읽고 끄적였다는 거로 '그래도 난 뭔가는 했어'라며 자위하고 있는 건 아닌지...
하는 생각.
숙고해봐야 한다.
내 결론은. 성 의식에 대해 여성들에게만 유난히 가혹하고 엄격하게 적용하는 문화 지층을 과감히 뚫고 나온 이들이 공중에 발가벗겨지며 울컥 토해내는 울부짖음 같은 것(20180315)
방관자들도 어느 한편을 들어야만 한다.
가해자 쪽에 서면 만사 편하다. 모든 가해자가 방관자들에게 요구하는 건 아무 것도 하지 말라는 것이기 때문이다. 가해자는 악을 보지도 듣지도 말하지도 않으려는 보편적 욕구에 호소한다. 반대로 피해자는 방관자들에게 고통 분담을 요구한다. 피해자는 행동, 개입, 그리고 기억을 요구한다...
죄의 책임에서 벗어나려는 가해자는 망각을 위해 전력을 다한다. 비밀과 침묵은 가해자의 첫 번째 방어벽이다. 비밀의 벽이 무너지면 이제 가해자는 피해자의 신뢰성을 공격한다. 피해자를 침묵시키는 데 실패하면 누구도 그 말에 귀 기울이지 않게 만들려고 한다. 그래서 가해자는 일련의 논쟁거리를 만들어낸다. 노골적 부인에서 정교하고 고상한 합리화에 이르기까지 모든 수단을 동원한다. 극악무도한 행위를 저지른 가해자들은 뻔한 사과를 한다. 그런 일은 없었다, 피해자가 거짓말을 한다, 피해자가 부풀린 것이다, 피해자가 자초한 것이다, 하고 주장한다. 그러면서 과거를 잊고 앞으로 나아가자고 한다. 가해자의 힘과 특권이 클수록 그런 주장은 더 확실히 먹힌다.
- 트라우마, 주디스 루이스 허먼 -
강간이 피해자가 거짓말한다는 의심을 받는 유일한 범죄라고 보일런은 강조했다. "골목에서 강도를 당했을 경우에도 우리는 피해자의 증언을 의심할까요? 목격자가 아무도 없다는 이유로 그렇게 할까요? 도둑질당한 사람이 문을 잠그지 않고 있었다는 이유로 피해자를 의심할까요?" 보일런은 어떤 범죄든 피해자가 비난을 받아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책임을 물어야 할 대상은 가해자다.
솔직히 나는 사람들이 지인이 의한 강간에 관해 너무 모른다는 사실에 놀랐습니다. 강간에 관한 구태의연한 관념이 지배적이었어요. 그런 사람들의 생각은 딱 두 가지로 요약될 수 있어요.
(1) 덤불 속에 숨어 있던 낯선 사람이 갑자기 덮친다.
(2) 여성이 죽을힘을 다해 저항하면 강간은 불가능하다.
헌법상의 무죄 추정 원칙에도 불구하고, 형사 피고인의 압도적 다수는 유죄라는 사실을 나는 알게 되었다. 내 의뢰인 거의 대부분이 유죄였다...
사건을 맡으면 내 목표는 단 한 가지, 승리뿐이다. 정당하고 법적인 모든 수단을 동원해 의뢰인을 방면시키려 노력한다. 그로 인한 파장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는다...
대형 사건에서 승리한 변호사가 의뢰인에게 "정의가 승리했다"는 전보를 보내자 의뢰인이 "즉각 항소하라"는 답신을 보냈다는 오래된 일화가 있다. 이 일화는 우리 사법체계의 현실을 보여준다. 대부분의 소송 참가자에게는 이기는 것이 "유일한 목표"다. 형사사건 피고인과 그들의 변호사는 정의를 바라는게 아니다. 무죄 방면을, 그게 안 되면 단기형이라도 얻어내려 한다.
법정선서 -"진실을 말할 것, 있는 그대로 진실과 오직 진실만을 말할 것"- 는 증인에게만 적용된다. 피고 측 변호인, 검사, 판사는 이 선서를 하지 않는다. 할 수가 없다! 솔직히 말해, 있는 그대로 진실을 말하지 않는 것이 미국 사법체계의 토대를 이루고 있다. 피고 측 변호인 -특히 유죄 피고인을 변호하는 변호인- 의 임무는 모든 합법적 수단을 동원해 "있는 그대로의 진실"이 드러나는 것을 막는 것이다.
범죄 피해자의 정신건강에 필요한 것은 법적 절차와 정반대의 것이다. 피해자들에게는 사회적 안정과 지지가 필요하다. 하지만 법정은 신뢰성에 공개적으로 의문이 제기되는 것을 감내할 것을 요구한다. 피해자들은 자신의 삶에 대한 통제력을 회복할 필요가 있다. 반대로 법정은 그들이 이해하기도 힘들고 통제할 수도 없는 일련의 복잡한 규칙과 절차에 순응할 것을 요구한다. 피해자들에게는 스스로 선택한 환경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자기 방식으로 말할 기회가 필요하다. 법정은 '예, 아니요'로만 대답하라고 요구함으로써 피해자들이 일관되고 의미 있는 스토리를 구성하지 못하도록 한다. 피해자들은 폭력 범죄를 상기시키는 것들에 노출되는 일을 통제하거나 제한할 힘이 필요하다. 하지만 법정은 가해자와 직접 마주보면서 그 경험을 재현할 것을 요구한다.
강간범들은 피해자의 침묵을 이용해 책임에서 벗어난다. 자기 이야기를 밝히면서 그런 침묵을 깨는 것만으로도 피해자들은 강간범에게 강한 일격을 날릴 수 있다. 전면에 나선 많은 피해자들이 불신을 경험한다. 법정에서 정의가 실현되지 않는 일도 부지기수다. 하지만 드러내어 말함으로써 그들은 다른 피해자에게 자기 이야기를 하라고 격려하는 역할을 하며, 그 과정에서 스스로가 치유됨을 느끼기도 한다. 그림자 속에서 벗어나 성폭행이 얼마나 만연해 있는지를 밝히는 피해자들이 늘어날수록 그들의 힘도 커진다. 이 집단적 강인함이 모든 피해자에게, 너무 두려워 자기 이야기를 하지 못하는 피해자에게도 힘을 준다. 그들의 느끼지 않아도 될 수치심은 대개 고립 속에서 자라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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