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편소설, 종이책
......깊은 땅속 암반 사이사이로 기어다니며 사는 짐승이란다.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놈들을 다 합쳐보면 수천 마리나 되지만 가족을 이루지 않고 늘 외돌토리로 다니지. 생기기는 사슴 모양으로 생겼는데, 온몸에는 시꺼먼 털이 돋았고 두 눈은 굶주린 범처럼 형형하다. 바윗돌을 씹어먹어 배고픔을 이기느라고 이빨은 늑대 송곳니처럼 날카롭고 단단하지. 이마에는 번쩍이는 뿔이 한 자도 넘게 자라 있어서 이 짐승이 걸어가는 길 앞을 관솔불마냥 훤하게 밝혀준단다.
저 월산 탄광이나 황곡 광산에서 채굴 작업을 하던 광부들이 이따금씩 이 짐승과 마주치는데, 그때마다 이 짐승. 평생에 단 한 번만이라도 하늘을 보는 것이 소원인 이놈은 바깥으로 나가는 길을 가르쳐달라고 부탁을 한단다. 잡아먹히는 것이나 아닌가 벌벌 떨고 있던 광부들은 조건을 내걸지.
'네 번쩍이는 뿔을 자르게 해다오. 그러면 하늘을 볼 수 있게 해주마.'
짐승은 한참 동안 망설이다가 이마를 앞으로 내밀지. 일단 뿔을 자른 광부들은 몇 발짝쯤 짐승을 데리고 가다가 다시 조건을 내건다.
'네 단단하고 날카로운 이빨을 다오. 그러면 하늘을 볼 수 있도록 해주마.'
짐승은 이번에는 그럴 수 없다고 버티지. 하지만 광부들은 수가 여럿이고 짐승은 혼자 몸이니 배겨낼 수가 있나. 한 사람은 뿔이 뭉툭하게 잘라진 짐승의 이마를 잡고, 다른 한 사람은 시커먼 짐승의 뒷다리를 잡고, 남은 사람들이 짐승의 뾰족한 이빨을 뽑아내지. 거무죽죽한 피가 짐승의 입이며 턱이며 이마에서 뚝뚝 흘러내리는 것을 보면서 광부들을 허둥지둥 동료들의 불빛이 번쩍이는 갱도 안쪽을 향해 달려가버린단다......
......그때부터 이 짐승은 아무것도 먹지 못하고 아무것도 보지 못하는 채로 컴컴한 암반 사이를 느릿느릿 기어다니며 흐느껴 운단다. 마지막으로 숨이 넘어갈 때쯤 되면 이 짐승의 몸은 들쥐 새끼만하게 웅크려져 있지.
열의 하나쯤이나 될까. 운좋게 암반 사이의 가느다란 틈을 비집고 나와 꿈에도 그리던 하늘을 보게 되는 경우도 있기는 한데, 이상하게도 햇빛을 받자마자 이 짐승은 순식간에 끈적끈적한 진홍색 웅덩이로 변해버린다. 눈부터 빨갛게 녹아버리는 거다.
이 웅덩이 물을 살쾡이란 놈이 무척 좋아해서 기다렸다는 듯이 햝아먹어버리고는 한단다. 하지만 어쩌다가 낙엽 속에 숨고 눈 속에 묻혀 살쾡이의 눈에 띄지 않는 경우가 있지. 계절이 바뀌고 한 해가 가고 또 십 년이 가고 백 년이 가면서 그 웅덩이가 썩은 자리에 어느덧 연한 풀이 돋고, 자그마한 꽃들이 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