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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주의자 선언 - 문유석

by 충청도 자손박 2018. 2. 26.
개인주의자 선언 (양장본)
국내도서
저자 : 문유석
출판 : 문학동네 2015.0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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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종이책

문학은 겉으로 드러나는 세계에 머물지 않고 인간의 숨기고 싶은 속내 깊숙한 곳을 파헤쳐 보여주곤 한다. 문학이 보여주는 인간 세상의 민낯은 전형적이지 않다. 작가들은 뻔하고 예측가능한 것에 관심이 없다. 그들은 충동적이고, 불가해하고, 모순 덩어리인 인간 마음의 꿈틀거림을 묘사하는 것에 몰두한다. 그리고 그 관찰의 주된 재료는 작가 자신의 내면일 것이다. 어린 시절부터 자신의 마음을 스쳐갔던 온갖 미묘한 감정과 충동들, 질투, 선망, 욕정, 열등감, 우월감, 증오, 살의...... 자신을 주어로 하여 털어놓기는 어려운 날것의 내면적 충동들을 재료로 상상력을 가미하고 증폭, 변형하여 등장인물들의 내면을 창조해낸다.
인간 행위를 기술하는 방식에는 문학 이외에 육하원칙이 지배하는 신문기사가 있다. 두 방식에는 큰 차이가 있다. 인간이 저지르는 사건은 결국 인간 내면의 작용인데, 기자들은 주로 외형적 행위와 그 결과에만 치중하고 내면의 동기는 돈, 욕정, 복수심 등으로 간명하게 유형화되곤 한다. 사람들은 복잡한 사건을 쉽게 이해하길 원하고, 누가 나쁜 놈이고 누가 착한 놈인지 누구에게 분노하면 되는지 결론부터 알려주기를 성마르게 재촉하기 때문이다. 대중의 분노는 즉각적이고 선명한 정의를 요구한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법관으로 일해온 경험에 비춰보면 실제 인간 세계에서 벌어지는 일들 중 상당수는 인관관계도, 동기도, 선악 구분도 명확하지 않다. 신문기사처럼 몇 문장으로 쉽게 설명하기 어려운 일이 참으로 많다. 그래서 흔히들 생각하는 것과 달리 냉정한 '팩트' 집합으로 보이는 신문기사보다 주관적인 내면고백 덩어리로 보이는 문학이 실제 인간이 저지르는 일들을 더 잘 설명해 줄 때가 많다. 작가는 최소한 자기 자신이라는 한 인간의 심층적인 내면세계를 관찰해서 쓰기 때문이다. 물론, 좋은 작가일 경우의 이야기지만 말이다.

슬로빅에 따르면 일반인이 체감하는 위험도는 양적 지표보다는 결과의 끔찍함 정도, 자신의 지식 범위 밖에 있는 미지의 정도, 위험에 노출되는 사람 수에 따라 주로 결정된다고 한다. 치사율이 높다고 알려진 신종 전염병은 이 세 가지 요소를 모두 충족한다. 한국인이 미개해서 메르스에 대해 호들갑을 떠는 것이 아니다. 메르스에 대한 공포는 인간의 보편적인 심리 구조에 기인한 공포인 것이다.
심리학자들은 일견 비합리적으로 보이는 인간의 직관들을 오랜 진화 과정의 산물로 생각한다. 맹수나 독초 같은 미지의 위험이 가득한 원시 수렵생활에서 확률 계산을 하기보다는 과민할 정도로 위험을 경계하고 피하는 것이 생존 확률을 높였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