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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 종이책
시뮬라크르, 시뮬라시옹
제 언어의 본질이 부정당하자 자연은 애도의 침묵을 지켰다. 예술도 마찬가지다. 관리되는 사회의 비인간성에 항의하기 위해 예술은 이 침묵을 미메시스한다. 현대 예술은 사회와의 소통을 거부한다. 왜? 소통은 '코드'를 전제하고, '코드'는 획일성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모든 것을 획일화하는 동일성의 폭력에 저항하기 위해 예술은 사회 안에 통용되는 '코드'를 거부한다. 그 결과 오늘날의 예술은 평균적인 대중에게는 이해될 수 없는 것으로 남는다. 이는 현대 예술이 관리되는 사회의 비인간성에 항의하는 방식이다.
고전 예술은 대중과 '코드'를 공유했다. 현대 예술은 일부러 그 공통의 '코드'를 깨고, 다양한 형식 실험을 통해 오직 자기만의 '코드'를 만들어낸다. 현대 예술이 어려운 것은 이 때문이다. 왜 현대 예술은 사회에 널리 공유되는 코드를 거부하고 굳이 이해되지 않으려 하는가? 그것은 모든 것을 획일화하는 동일성의 폭력으로부터 자기의 개별성과 고유성을 지키기 위해서다. 오직 이렇게 할 때만이 예술은 비인간적인 사회 속에서 유일하게 인간적인 존재로 남을 수 있다.
하지만 자본주의 문화산업은 일탈을 용납하지 않는다. 그것은 제아무리 난해한 작품도 대중이 이해하는 코드로 번역해 상품으로 판매한다. 한떄 충격을 주었던 피카소와 칸딘스키의 작품도 오늘날 무리 없이 받아들여진다. 그래서 예술은 끝없이 자신을 혁신할 수밖에 없다. 자기를 상투적 코드 안에 가두려는 문화산업의 추적을 피해 끝없이 탈주하며, 끝까지 이해되지 않는 이성의 타자로 남으려 한다. 자연을 전혀 닮지 않으면서도 현대 예술은 이렇게 자연을 미메시스한다.
< Crucifixion, Francis Bacon, 196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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