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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 종이책
전기傳記집필이란 고작 일백여 개의 조각만을 겨우 긁어모은 뒤, 일천 개의 조각이 필요한 퍼즐을 완성시키겠다고 덤비는 아이의 무모한 유희에 비유할 수 있지 않을까? 아무짝에도 소용없는 우거지, 쓰레기까지 포함된 일백여 개의 조각만으로 그림이 완성됐다고 주장하기 위해서 전기작가는 자신의 글에 권위를 부여할 몇 가지 제도적 장치를 끌어들여야 한다. 예컨대 두 점 사이에 선을 긋기 위해서 직선 개념을 도입하는 것과 비슷하다. 전기작가가 사실과 픽션의 모호한 경계선에서 글을 쓴다는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도입하는 이러한 전기 산업의 몇 가지 규칙은 원칙적으로 옳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가장 잘 씌어진 전기가 그 대상 인물의 삶과 조화롭게 어울린다는 말은 아니다. 두 점 사이의 최단거리를 잇는 선이 직선이 아닐 수도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듯이 말이다. 전기란 결국 긁어모은 허섭스레기들로 괴싱방측한 그림을 짜맞춰 놓은 창작에 불과해 전기작기가 완벽한 전기를 쓰면 쓸수록 실제 인물과이 차이는 더 커지게 된다. 이후에는 강변밖에 남지 않는데, 이를 전기 집필의 딜레마라고 말할 수 있겠다.
"문제는 진짜냐 가짜냐가 아니라는 것이죠. 보는 바에 따라서 그것은 진짜일 수도 있고 가짜일 수도 있습니다. 이상 문학을 두고 최재서와 김문집이 각각 다르게 말한 것처럼 말입니다. 이상과 관련해서는 열정이나 논리를 뛰어넘어 믿느냐 안 믿느냐의 문제란 말입니다. 진짜라서 믿는 게 아니라 믿기 때문에 진짜인 것이고 믿기 때문에 가짜인 것이죠. ( …) 다만 무한한 어떤 것 앞에서는 존재 그 자체가 중요하지, 진짜와 가짜의 구분은 애매해진다는 말입니다."
나는내兒孩(아해)다. 아버지가나의거울이무섭다고그런다. 사람의팔그속의水銀(수은). 싸움하지아니하는二匹(이필?)의平面鏡(평면경)은없다. 네가보아도좋다. 싸움하는上脂(상지)에사기컵이손바닥만한하늘을구경한다.銃(총)은鸚鵡(앵무)의꿈이 있다. 그러나그것으로부터그중의나비떼가죽었다. 무서워하는혹은自殺(자살)하는비둘기의손. 들窓(창)이하얀帽子(모자)를쓴나를날아가게하려한다. 드디어나는城(성)으로들어간다. 또무서운무엇이白紙(백지)처럼거대한가슴의걸인이있다. 13을아는게적당하다. 試驗(시험)에서나는쏘지아니할것이로다.
“아니, 뭐 그럴 것 없습니다. 제가 다 헤아려놓았거든요. 「오감도」 열다섯 편에 1인칭 주격 ‘나'는 모두 마흔네 번 나옵니다. 「오감도」 열다섯 편에서 가장 많이 등장하는 단어랄까요. 그러기에 「오감도」라는 게 ‘나', 즉 이상 본인에 관한 얘기라고 하지 않습니까? 그럼 두번째로 많이 나오는 단어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너'일까요? ‘그대' 일까요? ‘거울'일까요? 주선생은 별로 알고 싶지 않겠지만 '내'라는 소유격이에요. 모두 서른세 번이 나오죠. 이상이 지독한 에고이스트였다는 사실이 분명해지죠. 이어 세번째로 많이 나오는 단어는 ‘아해'로 모두 스물여덟 번이 나오고 네번째로는 열여덟 번이 나오는 '아버지', 다섯번째는 열일곱 번이 나오는 또다른 소유격 ‘나의', 여섯번째는 열세 번씩 나오는 ‘거울’ ‘무섭다’ ‘그리오’입니다"
(.....)
"그렇게 많이 나오는 단어를 쭉 정리해서 순서대로 늘어놓으면 어떻게 되는지 아시오? 나, 내, 아해, 아버지, 나의, 거울, 무섭다, 그리오. 이게 뭡니까? 당신이 오늘 신문에다 발표한 「오감도 시 제 16호 실화」라는 것 아닙니까?"
< 친구의 초상, 구본웅, 1935 >
< 이상, 박태원, 김소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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