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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드라마

집착의 순환구조 - 움(womb)

by 충청도 자손박 2015. 12. 21.

2012.02.23, 베네덱 플리고프/에바 그린/맷 스미스


에바 그린의 절제된 연기와 초연한 태도, 극 전체에 흐르는 적막한 공백이 너무나 우아해서 필연적이라고 밖에 말할 수 없는 긴장감을 가진 작품이다.




어렸을 적 잠깐 만난 '그'와의 행복했던 기억을 움켜쥐고 '그'를 그리며 사는 '그녀'.

10여 년 만에 다시 만난 '그'가 불의의 사고로 목숨을 잃게 되고, 실의에 빠진 '그녀'는 과학의 힘을 빌려 '그'의 유전자로 '그'를 잉태하고 낳아서 키우게 된다. 




'그'를 '자식'으로 대하는 '그녀'의 마음을 가늠해보기란 나에겐 요원한 일처럼 보이지만, 레베카 역을 맡은 에바 그린이 극 중간중간 그려내는 미묘한 '성'적 뉘앙스로 대신해 볼 수는 있겠다. '통속적 가치관을 정면으로 반박하는 에로틱한 긴장상태' 랄까?





극 막바지, 자신이 복제인간인 걸 안 '그'는 '그녀'를 떠나기 전, 감정을 주체하지 못해 '그녀'와 우발적인 섹스를 하게 되고 '그'의 정자를 '그녀'가 받아들임으로써 '그녀'는 또 다른 '그'와 함께 할 기회를 얻게 된다.





극 초반, 임신한 배를 움켜쥐고 있던 '그녀'의 초연한 대사 


이제 다 끝났어

난 언제나 네게 말을 걸 거야.

네가 대답하지 않아도 상관없어.

네가 떠났다고 네가 여기 없는 건 아니니까.

내게 필요했던 건 이런 선물인지도 몰라.

네가 내게 주고 간 마지막 선물...


가 극의 끝과 연결되며 '그녀'만의 순환구조를 매듭짓게 된다.

이를 사랑의 순결을 완성하기 위함이 아닌, 나르시시즘적인 '집착의 순환구조'로 보는 건 지나친 논리적 비약(a jump of logic)일까?



<수태고지, 레오나르도 다 빈치, 1472>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수태고지는 대천사 가브리엘이 성모 마리아에게 그리스도의 수태를 알리는 장면을 그리고 있다.

이 과정을 통해 동정녀 마리아는 그리스도라는 한 줄기 빛을 '우리'에게 내려주었지만, '그녀'는 '자신'의 갈급함을 달래기 위해 비어있던 자궁(womb)을 '그'의 유전자로 채우고, 종래엔 '그'의 부활을 통해 '자기'만을 위한 한 줄기 치유의 빛을 내리게 된다. 하지만 그것이 치유의 빛이 아님을 깨닫게 되고, 빛을 쫓기보다는 자신의 자궁(womb)에 무언가를 채우는 행위에 더 집착함으로써 존재를 확인 받고자 했던 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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