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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력자 - 최민석

by 충청도 자손박 2015. 11. 22.

능력자 - 2012년 제36회 오늘의작가상 수상작
국내도서
저자 : 최민석
출판 : 민음사 2012.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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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으로 읽음.

참 재밌는 사람이야ㅋㅋㅋ

유일하게 진지한 두 단락.

그러니까, 우리는 평가에 목을 매고 평가에 울고 웃는 이상, 줄기차게 평가만 쫓아가게 돼. 그건 너무나 아슬아슬한 인생이라고. 나를 봐. 챔피언이지만, 한 번 진 걸로 영원한 패배자야. 게다가, 링 안에선 이겨 봤다고 쳐. 링 밖에선? 나는 완벽한 패배자야. 그건 모두 사람들이 오로지 승부에 집착하고, 결과만 기억하고, 땀 흘리는 과정을 소중히 여기지 않기 때문이야. 나는 그저 매일 땀 흘리며 훈련하고, 내가 뭔가를 위해 할 수 있다는 사실 자체가 좋았다고. 그뿐이야. 그런데, 지금은? 사람들은 나를 실패자로 기억해. 아니, 기억조차 못해. 시간 탓이라고? 천만에. 그것보다 우리가 결과 위주, 성과 위주, 경력 위주의 가치관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야. 그 때문에 우리 모두 각자의 능력을 기르고 있어. 물론 평범한 능력으론 살아남지 못해. 그건 동화일 뿐이야. 현실에선 피땀 흘려 챔피언이 된 나조차, 무능력하기 그지 없잖아. 결국, 능력의 세계는 끝이 없는 거야. 끝없는 자기 학대, 그래서 자신이 삶의 주인인지 노예인지 알 수조차 없는 상태, 그걸 노력이라 포장하고, 극기라 부르지. 교묘한 말 바꾸기야. 그건 자신을 이기는 게 아니라, 자기 탐욕의 노예가 되는 거라고. 물론 나도 그랬어. 하지만, 그래서 얻은 건 세월의 바람에 다 흩날리고 말았어. 이젠 안 그럴 거야. 할 수 있는 만큼만 할 거라고. 대신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최선을 다할 거야. 하지만 내가 할 수 없는 것을 바라는 건 초능력이라고. 무슨 말인지 알겠어. 초능력이란 말이야. 초능력.

그건 모두 문예지를 끼고 있는 출만사들이 문예지에 발표한 소설들만 인정하는 풍토를 조성하고, 문예지를 내는 출판사만이 정통성 있는 문학 출판사라는 첨탑을 쌓고, 그 카르텔에 끼지 못한 출판사들이 내는 책을 이른바 '대중 문학', '상업 소설', 혹은 그 출판사 자체를 '상업 출판사'로 격하시키기 위한 것 아닙니까! 그러한 영겁의 세월을 기다리게 하여 작가들을 자신들의 통제권하에 넣고, 게다가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신인 작가들을 손쉽게 통제하기 위한 정치적 술수 아닙니까! 작품성? 좋습니다. 작품성을 높이기 위해서 그렇다 칩시다. 그러면 이미 작품성이 뛰어난 작품은 왜 바로 내지 않는 겁니까. 게다가 그 작품성이라는 것은 누가 입증하고, 누가 합의합니까. 카르텔에 편입한 몇몇 문필가들의 취향이 모든 독자의 취향을 반영한다는 증거가 어디 있습니까. 이건 누가 보더라도 제도권 출판사들의 문학적 철옹성을 더욱 공고히 하기 위한 전근대적 수단에 지나지 않습니다. 신인 작가의 이름을 독자에게 친숙하게 하기 위해? 좋습니다. 그렇다 칩시다. 계절마다 한 권씩 나오는 문예지를 통해 이름을 서서히 알린다 칩시다. 그런데 그런 문예지가 몇 권입니까. 고작 열 권 남짓입니다. 지방에서 출판되는 것을 통틀어서 말입니다. 그런데 그 문예지에는 이미 기성 작가들의 원고만으로도 넘쳐 납니다. 신인 작가에게 지면을 주면서 그런 말이라도 하십시오. 현실적인 이유로 아무리 잘해 준다 쳐도 1년에 한 번 청탁하는 게 최우선 아닙니까. 그런 식으로 1년에 한 편씩 발표하면 기껏 단편 소설집 하나 내는 데 칠팔 년이 걸립니다. 아, 칠팔 년까진 걸리지 않겠네요. 그사이 굶어 죽은 신인 작가는 이미 한 줌의 재가 되어 선산에 부는 바람에 나부끼거나, 일치감치 문학을 포기하고 생계 전선으로 뛰어들었을 테니까요. 그러니까, 결국 원하는 건 당신들의 그 대단한 문학적 철옹성은 개방하지 않을 테니, 알아서 장벽을 뛰어넘으라는 것 아닙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