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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드라마

드라이브 마이 카

by 충청도 자손박 2024. 6. 9.

바냐 아저씨, 무라카미 하루키


그녀는 때때로 야마가의 집에 몰래 들어가고 있어.
- 야마가?
그녀의 첫사랑 상대 이름.
같은 학교 동급생.
하지만 야마가는 그녀의 마음을 몰라.
그녀도 야마가가 몰랐으면 하니 상관없어.
하지만 야마가에 대해 알고 싶어.
자신에 대한 건 몰랐으면 좋겠고 그에 대한 모든 게 알고 싶은 거야.
- 그래서 빈집에 들어가는군
야마가가 수업 받고 있을 때 그녀는 몸이 안 좋다고 조퇴해
야마가는 외동이고 아빠는 회사원 엄마는 학교 선생님.
집에 아무도 없는 것도 친구에게 들어서 알아.
- 어떻게 들어가지? 평범한 여고생이잖아
그녀가 짐작한대로 현관 옆 화분 밑을 뒤져봐 거기에 열쇠가 있어.
- 조심성이 없네
그렇게 그녀는 야마가 집에 몰래 들어가.
2층으로 올라가 문을 열어.
옷걸이에 걸린 축구 유니폼 등번호로 거기가 야마가 방인 걸 확인해.
열일곱 살 남자답지 않게 정돈된 방에서 그녀는 부모의, 특히 엄마의 강한 통제를 느껴.
공기를 들이마셔.
귀를 기울여.
침묵이 들려와.
보청기를 겪을 때처럼 강조된 고요함이 그 방안을 울리고 있어.
그녀는 야마가의 침대에 몸을 던져.
그녀는 자위하고 싶은 충동을 눌러.
- 왜? TV 드라마의 한계인가?
아니, 그녀 안엔 규칙이 있기 때문이야.
해도 되는 일과 해선 안 되는 일이 있어.
- 빈집에 들어가는 건 괜찮지만 자위를 해선 안된다?
그래.

그녀는 사용하지 않은 탐폰을 그 방에 두고 나와(...)
그래서 그녀는 가방에서 사용하지 않은 탐폰을 꺼내 그의 책상 서랍에 넣어.
'그를 과보호하는 엄마가 눈치챈다면...' 그렇게 생각하니 그녀의 가슴이 두근거려.
- 변태네.
탐폰은 그녀가 거기에 있었다는 징표인 거지.
- 징표? 
그녀는 그 후에도 때때로 조퇴하고 빈집에 들어가.
위험하다는 건 충분히 알아.
그녀는 부모나 교사에게 신뢰받는 타입이라서 들키면 잃는게 많아.
- 그런데도 그만둘 수가 없어. 
그만 둘 수 없지.
방에선 약간의 냄새라도 맡으려 구석까지 살피고
돌아갈 땐 항상 야마가의 징표를 갖고 가.
연필꽂이 속 연필 같은 없어져도 모를 것들을...
그녀도 자신의 징표를 놓고 가지.
가장 대담해졌을 때 그녀는 입고 있었던 속옷을 그의 옷장 가장 깊숙한 곳에 두고 와.
그렇게 징표를 교환하면서 둘이 점점 섞이고 있다고 느끼게 돼.
그녀는 그 행동이 그에게... 엄마 지배에서 벗어날 힘을 주는 듯해. 
오늘 얘기는 여기까지.

그래? 이어지는 얘기 알고 싶어?
- 응 알고 싶어
기다릴까? 쓸까? 어떻게 하지?
- 아직 기다려도 되잖아?
그러네 나도 뒷얘기가 알고 싶어

어느 날 그녀는 전생의 일을 떠올려.
- 그녀라면 사랑에 빠진도둑?
전생에 그녀는 칠성장어였어. 
- 칠성장어?
그녀는 고귀한 칠성장어였어.
다른 칠성장어처럼 위를 지나는 물고기에게 기생하지 않아.
강바닥에 있는 돌에 빨판 같은 입술을 붙이고 그저 흔들거리고 있어.
깡말라서 결과 정말 해초처럼 될 때까지 그녀는 돌에 달라붙어 있었어.
어떻게 죽었는지 기억하지 못해.
굶어 죽었는지.
다른 물고기에게 먹혔는지.
그저 흔들거리고 있던 것만 기억나.
야마가의 방에서 그녀는 갑자기 이해하게 돼.
여기는... 그때 그대로다.
돌에 달라붙어 있을 때처럼 야마가의 방에서 떨어질 수 없어.
그래 이 방의 침묵은... 물속과 아주 많이 닮아있어.
시간이 멈춰 과거와 현재가 없어져 버려. 
- 그렇게 그녀는 칠성장어로 돌아가 버렸어.
그녀는... 야마가의 침대 위에서 자위를 시작했어.
옷을 하나하나 전부 벗어던져.
계속 금지하고 있었는데 멈출 수가 없어.
눈물이 흘러나왔어.
베개가 젖었어.
그녀는 그 눈물이 오늘 자기의 징표라 생각해.
그때 누군가가 돌아왔어.
1층에 문이 열려.
정신을 차려 보니 창밖이 어두워지기 시작했어.
야마가인가. 그의 아버지인가. 그의 어머니인가.
그 누군가가 계단을 올라오는 소리가 들려.
이제 끝이야.
하지만 이걸로 드디어 그만둘 수 있어.
드디어 끝이 나.
전생에서부터 이어진 업보의 고리에서 벗어나 그녀는 새로운 그녀가 된다.
문이 열려.

나와 오토 사이엔
딸이 있었어
4살때 폐렴으로 죽었어
살아 있었으면 스물세 살이야
딸의 죽음으로 우리의 행복한 시간은 끝났어
오토는 배우를 관뒀어
난 TV 일을 그만두고 무대로 돌아왔어
오토는 몇 년간 허탈 상태였어
그러다 어느 날 갑자기 이야기를 쓰기 시작했어
아니, 이야기하기 시작했지
오토의 첫 이야기는
나와의 섹스에서 탄생했어
섹스 직후에 오토는 갑자기 얘길 시작했어
하지만 다음 날 아침 그녀의 기억은 몽롱했지
난 다 기억하고 있어서 얘길 해 줬어
그녀는 그걸 각본으로 써 콩쿠르에 보냈고
수상을 하면서 각본가로서 첫발을 내디뎠지
섹스할 때 한 번씩 '그것'이 그녀를 찾아왔어
'그것'을 말하고 나에게 기억시켰어
다음 날 아침 내가 말을 해 주고
그녀는 그걸 메모했어
언젠가부터 습관이 됐지
섹스와 그녀의 이야기는 강하게 이어져 있었어
언뜻 관계없어 보이는 얘기라도
오르가슴 끝에 이야기의 실을 쥐고 뽑아 나갔지
그녀의 글쓰기 방식이야
다 그런 건 아냐
그녀가 궁지에 몰리면 어김없이 '그것'이 왔지
그 이야기는
딸의 죽음을 극복하기 위한 우리의 기반이 됐어
우린 잘 맞는 부부였다고 생각해
살아가기 위해 서로를 필요로 했어
일상의 생활도 그녀와의 섹스도
매우 만족스러운 것이었지
적어도 내게 있어선
하지만
오토에게 딴 남자가 있었어
그녀라면 괜찮아
오토는 딴 남자와 잤어
그것도 하나가 아니지
아마 그녀가 각본을 썼던 드라마 배우들과...
드라마 촬영이 끝나면 관계는 끝나고
다음 작품이 시작되면 또 다른 관계가 생겼어
- 증거가 있습니까?
목격한 적도 있어
오토는 집에 그들을 데려온 적도 있었어
그래도 그녀의 애정을 의심한 적은 없어
의심할 수가 없었어
오토는 자연스럽게 날 사랑하면서 배신했으니
우린 확실히 누구보다 깊이 이어져 있었어
그래도 그녀 안에는
들여다볼 수 없는 어두운 소용돌이가 있었어
- 그걸 오토 씨에게 직접 물은 적은 없습니까?
내가 제일 겁낸 건 오토를 잃는 일이었어
내가 눈치챈 걸 안다면 같은 형태로는 못 있었겠지
- 오토 씨가 물어보길 원했을 가능성은요?
자넨 오토한테 뭔가들은 게 있나?
- 오토 씨에게 들은 얘길해도 되겠습니까?
그럼
- 대단히 이상한 얘깁니다
- 여고생이 첫사랑 빈집에 몰래 들어가는 겁니다
그 얘기라면 나도 알고 있어
전생이 칠성장어였던 소녀 이야기
- 맞아요
- 소녀는 계속 그 집에 가 자신의 징표를 두고 오죠
그녀는 어느 날 야마가 침대에서 자위를 해
누군가 돌아오지 그게 누군지 모른 채로 얘기는 끝나
- 아뇨 끝나지 않습니다
자넨 그 뒤를 알고 있나?
- 네
그럼 누구지?
- 계단을 올라온 건...

그건 야마가도 그의 아빠나 엄마도 아닙니다
그냥 빈집털이예요
그리고 그 빈집털이는 반라의 그녀를 발견하고 강간하려 합니다
그녀는 야마가의 펜으로 그의 왼쪽 눈을 찌릅니다
필사적으로 저항하며 관자놀이와 목덜미를 몇 번이나 찌릅니다
정신 차리니 빈집털이가 쓰러져 있어요
그녀는 그를 죽인 겁니다
뿜어져 나온 피가 묻은 그녀는 샤워를 하고 집으로 돌아갑니다
그녀가 야마가 방에 남긴 오늘의 징표는 그 빈집털이 시체였습니다
다음 날 그녀는 야마가에게 다 고백하고 심판을 받을 작정으로 학교에 등교합니다
하지만 야마가는 평소처럼 학교에 와 있습니다
언제나처럼 해맑게 방과 후 축구에 전념하는 모습을 본 거죠
하루 더 살펴봐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무것도 변한 게 없어요
그 집의 시체는 어떻게 됐을까? 그 사건은 나의 망상이었을 뿐인가?
야마가 집 앞에 와 봐도 변한 게 없어 보여요
단지 하나 현관에 감시카메라가 설치된 걸 빼면요
그녀는 의심받지 않게 멈추지 않고 집 앞을 지나갑니다
끔찍한 일이 벌어졌는데... 게다가 그게 자신의 죄인데도 세상은 평화롭고 아무것도 변한 게 없어 보여요
하지만 이 세계는 불길한 무언가로 확실히 변하고 말았어요
그녀는 발길을 돌립니다
자신은...자신이 한 일의 책임을 져야 한다
아무 일도 없던 듯 살아서는 안 된다
그 일은 확실히 있었으니까
난 확실히 그 남자를 죽였으니까
그녀는 현관 앞 화분을 찾아보지만
거기에 열쇠는 없습니다
그녀는 감시카메라를 응시합니다
그것이 그녀가 이 세계에 일으킨 유일한 변화니까
감시카메라를 향해 몇 번이나같은 말을 되풀이합니다
음성이 없어도 알 수 있게 정확하게...
"내가 죽였어"
"내가 죽였어"
"내가 죽였어"

내가 아는 얘긴 여기까지입니다
이야긴 여기서 끝날지도 모르고 이어지는지도 모릅니다
뒷맛이 깔끔한 이야긴 아니지만 그래도 난 이 얘기를 들었을 때 소중한 것을 오토씨한테받은 느낌이었어요
가후쿠 씨
내가 아는 한
오토 씬 정말 멋진 여성이었습니다
물론 제가 알고 있는 건 가후쿠 씨가 아는 것의 백 분의 일도 안 되겠죠
그래도 난 확신을 갖고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런 멋진 사람과 20년간 함께 살았던 걸 가후쿠 씨는 감사해야 한다 그렇게 말입니다
하지만 아무리 이해한다고 생각하는 상대도 아무리 사랑하는 상대도 타인의 마음을 그대로 보는 건 무리죠
자신이 괴로워질 뿐입니다
그래도 그것이 자신의 마음이라면 노력 여하에 따라 제대로 엿볼 수는 있을 겁니다
결국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자신의 마음과 능숙하게 솔직하게 타협해 가는 것 아닐까요?
진실로 타인이 보고 싶으면 자기 자신을 깊이 똑바로 지켜볼 수밖에 없어요
난 그렇게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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