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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 종이책
걸작이다.
잠에서 깨는 것은 있다와 지금을 말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깨어난 그것은 한동안 가만히 누운 채 천장을 쳐다보고 그것으로 내려와 내가 인식되고, 그로부터 내가 있다가, 내가 지금 있다가 추론된다. 여기는 나중에 떠오르며, 부정적으로라도 안심이 된다. 왜냐하면 여기는 오늘 아침. 그것이 자신을 발견하리라 예상한 곳, 이름하여 집이기 때문이다.
거실은 어둡다. 천장은 낮고, 창 맞은편 벽은 온통 책이다. 이 책들 때문에 조지가 더 고상해지지도 더 나아지지도 더 진정으로 현명해지지도 않았다. 조지는 책의 목소리를, 기분에 따라 이 목소리, 저 목소리를 듣기 좋아할 뿐이다. 사람들 앞에서는 책을 존중하는 듯 말해야 하지만, 꽤 무자비하게 책을 오용한다. 잠들려고, 시곗바늘에서 주의를 돌리려고, 계속되는 날문경련수축을 달래려고, 우울에서 벗어날 잡담을 들으려고, 배설을 위한 장운동을 도우려고.
내가 알고 있는 것 모두가 나의 지금 모습으로 존재하고 있어. 그건 내가 자네에게 들려줄 수 없어. 자네가 직접 알아내야 해. 나는 자네 읽어야 할 책이야. 책이 스스로 말할수는 없지 않나? 책은 자기 안에 적힌 내용이 무엇인지도 모르지. 나도 내 안에 든 내용이 무엇인지 몰라.
침대에 있는 이 육체 안에서, 큰 펌프는 쉬지 않고 계속 작동한다. 조용히 맥박이 뛰는 이 탈것 안에서 두뇌를 맡은 일꾼들은 미세한 조정을 한다. 그 맨 위에서 일하는 일꾼들은 위험 신호밖에는 모른다. 대부분은 틀린 신호다. 겁에 질린 뇌줄기가 빨간 불빛을 깜박거리면, 침착한 대뇌겉질이 '이상 무'의 청신호로 단칼에 반박한다. 그러나 지금은 자동으로 작동 중이다. 대뇌겉질은 꾸벅꾸벅 졸고 있고, 뇌줄기는 가끔 나타나는 악몽만 알아챈다. 지금부터는 아침까지 이렇게 늘 하듯 정해진 대로 작동할 것 같다. 어떤 사고가 벌어질 가능성은 희박하다. 이 탈것의 운항 안전 성적은 뛰어나다.
우리가 조지라고 불렀던 비독립체의 일부가 이 손쓸 수 없는 발작의 순간에 깊은 바다로 나가서 부재했다면, 그 일부가 돌아왔을 때에는 집은 사라지고 없을 것이다. 그 일부는 여기, 침대 위, 코를 골지 않고 누워 있는 육신과 더이상 함께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 육신은 이제 뒤뜰 쓰레기통에 있는 쓰레기와 사촌이다. 둘 다 너무 늦기 전에, 멀리 실려가서 버려져야 한다.
< People In The Sun, 1960, 에드워드 호퍼 >
< 미국, 1904 ~ 198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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