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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와 영토 - 미셸 우엘벡

by 충청도 자손박 2017. 7. 9.
지도와 영토
국내도서
저자 : 미셸 우엘벡(Michel Houellebecq) / 장소미역
출판 : 문학동네 2011.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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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 종이책

아주 흥미로웠던...

데이미언 허스트, 제프 쿤스, 잭슨 폴록, 프랜시스 베이컨

제드는 비교라는 간접적 방식에 의해 그 자신도 예순 살이 되었음을 깨달았다. 놀라웠다. 자신이 이렇게까지 나이가 들었음을 자각하지 못하고 있었다. 우리는 타인과의 관계를 통해, 타인을 통해 자신을 바라보려는 경향이 있다. 물론 머리칼은 허옇게 세었고 얼굴은 주름으로 패었지만, 이 모든 것은 그가 젊은 시절 자신의 모습과 직접적으로 맞닥뜨리는 일 한 번 없이 부지불식간에 이루어졌다. 제드는 문득 이 어처구니없는 아이러니에 충격을 받았다. 이제껏 예술가로 살며 수천 장의 사진을 찍어온 그에게 정작 자신의 사진은 단 한 장도 없다니. 그는 자화상도 고려해본 적이 없었다. 무엇이 되었건, 한순간도 자신을 예술의 주체로 여긴 적은 결코 없었다.

제드 마르탱이 생애 후반부에 몰두했던 작품들은 유럽 산업 시대의 종말, 보다 폭넓게는 인류가 이룩한 산업 전체의 일시적이고 덧없는 특성에 대한 향수 어린 명상으로 비칠 수 있다. 이것이 가장 근접한 해석이리라. 하지만 이런 해석만으로는 광할하고 추상적인 미래도시 한복판에서 길을 잃은, 이 비장한 소형 플레이모빌 피규어들을 볼 때 엄습하는 불편함을 충분히 설명하지 못한다. 이 미래도시 또한 스스로 분열되고 붕괴되어, 무한히 뻗은 식물성의 광막한 공간 속으로 산산이 흩어지는 듯 보인다. 이런 당혹감은 제드 마르탱이 이 땅에서 사는 동안 함께했던 인간들을 소재로 한 작품, 즉 혹독한 기후의 영향을 받아 분해되고 박리되고 산산이 찢겨나간 사진들을 촬영한 영상을 마주할 때도 계속된다. 아마 이것이 인류의 전멸을 상징하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리라. 화면 속에서 그 사진들은 켜켜이 쌓인 식물의 사진들 속으로 빨려드는 듯하더니, 얼마간 발버둥치다가 이내 완전히 묻혀버리고 만다. 이윽고 정적이 흐른다.오직 바람에 풀들만이 하늘거릴 뿐. 식물의 압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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